장애극복상 받는 렌터카 회사 사장 조익래 씨 작성일08-04-18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조회 756회 작성일08-04-18첨부파일
- 조익래.jpg (0byte)
본문
장애극복상 받는 렌터카 회사 사장 조익래 씨
하반신 지체장애 1급인 조익래 곰두리렌트카 대표는 장애인 고용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18일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받는다. 사진 제공 조익래 씨
“장애인 택시 면허 길 터 일자리 나눴어요”
“장애인이 일자리를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제가 잘 압니다. 이제는 자리가 잡혔으니 저와 같은 사람들을 돕고 살아야죠.”
가슴 아래부터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하반신마비 지체장애 1급 조익래(56·부산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곰두리 렌트카’ 대표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표현했다.
조 대표는 “나도 장애가 있지만 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고 눈, 귀, 입도 멀쩡하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같은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것이 더 큰 보람”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사 직원 18명 중 14명이 하반신마비 1급 장애인이다. 그를 거쳐 간 장애인 직원만도 100여 명에 이른다.
조 대표는 18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보건복지가족부 주최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받는다.
1989년 그는 37세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원양어선을 타고 대서양을 누빈 적도 있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2년간 두문불출하며 괴로워했다.
그러다 1991년 ‘부산시 중증장애인 나들이’ 행사에서 장애인들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나도 다시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1994년 부산시 장애인교통대책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장애인 1종 운전면허 도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장애인 면허는 2종으로 제한돼 있어 그는 2종 면허로 불법 택시영업을 해야 했다.
“당시 면허 제한 때문에 많은 장애인들이 택시나 영업용 차량을 운전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연합회와 함께 전국 서명운동을 벌여 면허권을 얻어냈죠.”
그는 택시 영업을 그만두고 1996년부터 4년간 그린화재보험 영업사원으로도 일했고 장애인운전자 보험상품을 회사에 제안해 채택되기도 했다.
“휠체어를 끌고 부산에서 안 다닌 곳이 없습니다. 그 덕분에 3년 연속 영업실적 전국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조 대표는 2000년 3억 원의 투자를 받아 렌터카 회사를 차렸고, 직원은 대부분 장애인으로 고용했다.
조 씨는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려는 사회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김선태(67) 실로암안과병원장이 국민훈장 모란장, 오영복(72) 전 인천혜광학교 교장이 국민훈장 목련장, 김창환(59) 한국지체장애인대구협회 회장이 국민훈장 석류장 등을 받는 등 8명이 훈포장, 대통령 표창 및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다.
조 씨 외에 이영미(49)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공동대표 등 4명이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수상한다.
하반신 지체장애 1급인 조익래 곰두리렌트카 대표는 장애인 고용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18일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받는다. 사진 제공 조익래 씨
“장애인 택시 면허 길 터 일자리 나눴어요”
“장애인이 일자리를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제가 잘 압니다. 이제는 자리가 잡혔으니 저와 같은 사람들을 돕고 살아야죠.”
가슴 아래부터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하반신마비 지체장애 1급 조익래(56·부산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곰두리 렌트카’ 대표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표현했다.
조 대표는 “나도 장애가 있지만 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고 눈, 귀, 입도 멀쩡하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같은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것이 더 큰 보람”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사 직원 18명 중 14명이 하반신마비 1급 장애인이다. 그를 거쳐 간 장애인 직원만도 100여 명에 이른다.
조 대표는 18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보건복지가족부 주최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받는다.
1989년 그는 37세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원양어선을 타고 대서양을 누빈 적도 있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2년간 두문불출하며 괴로워했다.
그러다 1991년 ‘부산시 중증장애인 나들이’ 행사에서 장애인들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나도 다시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1994년 부산시 장애인교통대책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장애인 1종 운전면허 도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장애인 면허는 2종으로 제한돼 있어 그는 2종 면허로 불법 택시영업을 해야 했다.
“당시 면허 제한 때문에 많은 장애인들이 택시나 영업용 차량을 운전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연합회와 함께 전국 서명운동을 벌여 면허권을 얻어냈죠.”
그는 택시 영업을 그만두고 1996년부터 4년간 그린화재보험 영업사원으로도 일했고 장애인운전자 보험상품을 회사에 제안해 채택되기도 했다.
“휠체어를 끌고 부산에서 안 다닌 곳이 없습니다. 그 덕분에 3년 연속 영업실적 전국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조 대표는 2000년 3억 원의 투자를 받아 렌터카 회사를 차렸고, 직원은 대부분 장애인으로 고용했다.
조 씨는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려는 사회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김선태(67) 실로암안과병원장이 국민훈장 모란장, 오영복(72) 전 인천혜광학교 교장이 국민훈장 목련장, 김창환(59) 한국지체장애인대구협회 회장이 국민훈장 석류장 등을 받는 등 8명이 훈포장, 대통령 표창 및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다.
조 씨 외에 이영미(49)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공동대표 등 4명이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수상한다.